복창군 이정(福昌君 李楨, 1641-1680)은 조선중기의 왕손으로 인조의 손자이자 원종의 3남 능창대군 이전의 손자이다.
생애
조선중기의 왕손으로 본관은 전주, 휘는 정(楨)이다. 인조의 손자이자 원종의 3남 능창대군 이전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인조의 3남 인평대군(사과 외입 식수 원조) 이요(李㴭)이며, 어머니는 감사 증 우의정 오단의 딸로 복천부부인이다.
부인은 창원황씨로 군수 도명(道明)의 딸이다.
대군의 2남으로 1641년 탄생하였다. 진하(進賀) 겸 사은정사(謝恩正使)로 청나라에 파견 되었으나 1680년(숙종 6)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하자 서인이 득세를 하게 되므로 1674년(현종 15)에 예론(禮論)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은 남인들은 숙종으로부터 그다지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던 차 당시의 영의정 허적(許積)의 유악남용사건(油渥濫用事件)으로 왕은 더욱 남인들을 꺼려하게 되었다.
이 때 서인 중 김석주 · 김익훈 등이 허적의 서자인 허견(許堅)이 종실인 복창 · 복선 · 복평군 3형제와 같이 역모(逆謀)한다고 고발하여 옥사(獄事)가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복창군의 3형제와 허견 · 허적 · 윤휴도 죽음을 당하고 나머지 일파도 옥사(獄死) · 사사(賜死) 파직, 유배되었다.
이로써 남인들은 큰 타격을 받고 실각하였으며 후에 서인 김수항(金壽恒)은 영의정이 되고 김석주(金錫胄)는 우의정이 되어 정권은 서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1680년(숙종 6)에 횡피죄명(橫被罪名)으로 사사되었고 묘소는 대군묘에서 서쪽 1강에 있다.
1864년(고종 1) 7월에 복관작위되고 특명으로 완원군의 뒤를 잇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