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 | 오태백 삼양왕위(三讓王位) | |||
| 작성자 | 관리자 [2021-07-06 17:06: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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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기] 태백의 삼양왕위고사는 유명한 이야기이며 공자도 태백의 삼양왕위의 덕을 높이 칭송한 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태백의 삼양왕위고사를 통하여 그 안에 숨겨 있는 이야기를 찾아 보아야 한다. 태백은 왕위계승문제로 강남 무석매리로 가기 전에 먼저 오산으로 도망하여 그곳에서 은거했다. 당시 오산은 예로부터 오씨부족이 터를 닦고 살던 곳으로 주부락 기산에서 100km정도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산골이다. 태백은 오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곳에서 은거하였고 후에 오산의 오인들은 태백을 따라 남쪽의 먼 강남 무석 매리로 가서 태백을 도와 오국을 세웠다. ---------------------------------------------------------------------------
泰伯三让王位 태백의 세 번 왕위 양보
周太王古公亶父生有三个儿子,长子泰伯、次子仲雍、三子季历。季历娶太任,生下一个儿子,取名叫昌。昌从小就聪明异常,相貌奇伟,颇有王者风范,因此,深得古公宠爱。 주태왕 고공단보는 세 아들이 있는데 장자는 태백, 차자는 중옹, 삼자는 계력이다. 계력이 태임씨를 아내로 맞이하여 한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은 창이라 하였다. 창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비상하였으며 왕의 풍모를 지녀 고공의 총애를 많이 받았다.
泰伯奔吴山 태백 오산으로 도주(1차도주)
古公有意要将周家的天下传给姬昌。但是按照当时氏族的传统,王位只能由嫡长子继承。姬昌的父亲季历排行老三,自然没有资格承嗣王位,这势必导致姬昌不能继承周家的天下。古公亶父既不愿违背氏族的规矩,又为自己不能按心意传位给孙子姬昌而终日忧闷,郁郁寡欢。太伯和仲雍知道了父亲的心事后,为了顺从古公的意愿,在父亲生病的时候假托下山采药而从岐山出走,来到西面的吴山,即今天宝鸡县、陇县交界的新街镇的吴山。这就是历史上有名的太伯、仲雍奔吴的开始。吴山又称吴岳,在古代十分有名,被誉为“四镇”之一,这里离岐山周原大约100多公里,一直是古老的狩猎民族吴(虞)族的居住地。 고공은 왕위를 희창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씨족의 전통에 따라 왕위는 적장자에게만 계승할 수가 있었다. 희창의 부친 계력은 막내라 왕위를 계승받을 자격이 없었다. 따라서 계력의 아들 희창에게로 왕위가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공단보는 씨족의 전통을 어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고공단보는 이문제로 종일 고심하였다. 태백과 중옹은 부친의 심사를 알게 된 후 고공의 뜻을 따르고자 하였다. 마침 부친이 병이 나자 약초를 구하러 간다는 핑계로 주부락의 기산을 떠나서 서쪽의 오산으로 갔는데 그곳은 오늘날 보계현과 롱현의 경계에 위치한 곳이다. 그곳은 역사상 유명한 태백과 중옹이 오(吳)로 처음으로 도주해온 곳이다. 오산은 오악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곳은 고대의 사진(四鎭)의 하나로서 매우 유명한 곳이다. 오산은 주(周)부락이 있는 기산에서 대략 100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옛날부터 수렵민족인 오족(吳族)이 거주해 온 지역이다.
泰伯奔梅里 태백 매리로 도주(2차도주)
泰伯、仲雍入吴山不返,这样,季历就被改立为太子。不久,古公亶父因病去世。为了照顾氏族的传统,他临终时留下遗嘱,要季历将王位归还给泰伯。泰伯、仲雍得知父亲病故的消息后立即从吴山赶回来奔丧,极尽孝道。这时,季历依照父亲的遗命,定要把王位让给泰伯,泰伯坚辞不受。后来,泰伯见几次避让都不行,只好带着弟弟仲雍和西吴的族人远走高飞,举族南迁。他们从陕西西部的吴山出发,一路跋山涉水,披荆斩棘,向东辗转迁徙,最后到达长江人海处的江苏无锡梅里。泰伯奔梅里后,季历顺理成章地继承了王位,也成就了大周王室的千秋霸业,世人对泰伯高风亮节的行为赞不绝口。 태백과 중옹은 오산으로 간 후에 기산으로 돌아가지 않아 계력이 태자가 되었다. 오래되지 않아서 고공단보가 병으로 죽었다. 씨족전통에 따라 그는 임종시에 계력이 태백에게 왕위를 돌려주라고 유언하였다. 태백과 중옹은 부친의 병사소식을 듣고 즉시 오산에서 부친이 있는 기산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루며 효도를 다했다. 이때 계력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왕위를 태백에게 이양하고자 하였지만 태백은 극구 사양하였다. 그 후로도 계력이 몇 차례 찾아와 왕위를 태백에게 넘기고자 하였지만 태백은 사양한 채 동생 중옹과 오산에 있는 오인들을 데리고 머나먼 남쪽으로 옮겨 갔다.그들은 섬서성의 서부 오산을 출발하여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힘든 여정을 하여 강소성 무석 매리에 도착하였다. 태백이 매리로 떠난후 계력에게 왕위가 계승되었고 주 왕실의 천추 패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태백의 고풍양절의 행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칭송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출처: 중국 바이두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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