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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국 오산 오태백에 관한 역사전설
작성자 관리자 [2021-07-06 17: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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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기] 

중국 오산은 주(周)부락 기산에서 서쪽으로 100km정도 떨어진 산골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오태백에 관한 전설로 유명한 곳이다. 태백은 왕위계승문제로 주부락 기산을 떠나 강남 무석 매리로 오기 전에 먼저 오산으로 도망을 가서 은거했다. 오산은 예로부터 오씨부족이 터를 닦고 살던 곳이다. 태백은 그곳의 오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은거하였고 후에 오산의 오인들은 태백을 따라 강남 무석 매리로 가서 태백을 도와 오국을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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吴山的历史传说 

오산의 역사전설 

 

吴山在宝鸡,处在秦岭和陇山的合围之中,位居群山之首,是中国五镇山中的西镇名山。又名“吴岳”,亦名“岳山”,山势巍峨,五峰挺秀。130多通石碑,记载着几千年来历代帝王将相祭祀礼拜的历史。这是因为它与一位非同一般的历史人物--吴太伯紧密地联系在一起。传说远在禹夏之际,周太王古公亶父继承后稷、公刘的事业,由一个游牧民族发展为农业先进部落,率领部族从彬地即今天的旬邑、长武、彬县一带,循着漆水和沮水,翻越梁山,迁居到渭河北岸岐山之南的平原地带,安邦定国。古公亶父有三个儿子,太伯为长子,仲雍为次子,季历为三子。季历的儿子姬昌聪明灵利,相貌奇伟,很有王者风范。古公亶父从周人的长远发展着想,拟把王位传给三子季历,这是因为季历的妻子太妊是姜姓部落头人的女儿。联姻可以达到政治联合。政治联合对于具有雄心但又弱小的周人来说何其重要。深谋远虑的古公虽是如此打算,但又怕引起纠纷。按当时的授权规定,长子太伯顺理成章当继承王位。古公却要打破这个规距,显然是逆风而上,困难重重。这让他左右为难。太伯看见父王愁眉不展,善于洞察秋毫的他,很快就知道了父王的心事,当即和二弟仲雍相商后,就以给父王进山采药为由,奔到离岐山不远(100多公里)的吴山避居,作出非常明智的决定。季历在大哥ֻ二哥毅然出走的情况下,只好接受王位。后来,古公去世,太伯、仲雍奔丧,季历定要将王位还给太伯。而作为具有合法身份继承王位的吴太伯,这回把自己和三弟季历相比较,当是自愧不如,便不心生嫉恨,也不怨天忧人,自己不行就是不行,何必打肿脸充胖子。当即力断,回避退让,相偕二弟再回吴山。季历不愿委屈大哥,追到吴山执手恭让王位。太伯无奈,只好与二弟带着族人南迁,在江苏无锡一带建立了吴国。 

오산은 진령과 롱산이 둘러싸고 있는 한 가운데 있는 산으로 많은 산 중의 으뜸이다. 오산은 중국이 있는 5개 진산 중 서진의 명산으로 오악 또는 악산이라고도 부른다. 산세가 높으며 5개 봉우리가 매우 수려하다. 그곳에는 130개가 넘는 비석에 수 천년 전에 역대 제왕들이 제사한 기록들이 있다. 또한 그곳에는 오태백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먼 옛날 우하시대에 주태왕 고공단보는 후직과 공유의 유업을 계승하여 유목민족인 주부락을 선진농업부락으로 발전시키고자 부족들을 데리고 빈을 떠나서 칠수와 저수를 건너고 양산을 넘어 위하 북쪽 기슭에 있는 기산의 평야지대로 이주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 고공단보에게는 세 아들이 있는데 장자는 태백이고 차자는 중옹이며 삼자는 계력이다. 계력의 아들 희창이 총명하고 영리하고 왕의 풍모를 가졌다. 그리하여 고공단보는 주부락의 먼 장래를 생각하여 계력에게 왕위를 계승하여 창에게 이어지게 하려고 하였다. 또한 여기에는 계력의 처 태임이 강성부락의 수령의 딸이기 때문에 혼인관계를 통한 정치적인 연합을 도모하고자 한 것으로도 보인다. 당시 힘이 없는 주부락의 입장에서 정치적인 연합을 이루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고공단보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계산하였지만 분쟁이 생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당시 씨족의 규정에 따르면 장자인 태백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순리였다. 규정을 어기고 왕위를 계승하면 역풍이 불어서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 같아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태백은 부왕의 수심이 가득한 모습을 보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부왕의 마음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즉시 동생 중옹과 상의한 후 부왕에게 약초를 구하러 산에 간다고 핑계를 대고 기산에서 멀지 않은 오산(100km)으로 도망하였는데 이는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이처럼 두 형이 결연한 자세로 도망간 상황 하에서 마침내 계력에게 왕위가 계승되었다. 후에 고공단보가 죽자 태백과 중옹이 급히 집으로 돌아오자 계력은 합법적으로 왕위 계승권자인 태백에게 왕위를 돌려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태백은 단호히 사양하였다. 태백이 오산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력은 오산으로 찾아와서 예를 갖추며 태백에게 왕위를 이양하고자 하였다. 이에 태백은 할 수 없이 중옹과 더불어 오산의 부족인 오인들을 데리고 먼 남쪽으로 이주하여 강소성 무석 일대에서 오국을 건립하였다. 

출처 :중국 바이두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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