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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찰공 오가의(11세)
작성자 관리자 [2021-07-06 09: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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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의(吳可義)

 

휘(諱)  가의(可義)       (세종조 문과  사헌부 감찰)

감찰공은 세상에 빛나는 고관대작(高官大爵)의 명문집안으로 조년(早年)(젊은나이)에 등과하여 전상어사(殿上御使)에 이르렀는데 강한 자를 두려워 하지 않고 곧 잘 탄핵(彈劾)을 함으로써 소인들이 두려워 하여 총마어사(摠馬御使)라

 

 

지목하였다.  

공은 생각하기를 젊은 나이에 유명해져 당시 사람들에게 꺼림을 당하는 것이 길상(吉相)의 징조가 아니다 하여 은퇴를 결의(決意)하고 누차 상소(上疏)하여 사직을  청 하였으나 왕께서 허락하지 않아 억지로 직무를 수행하면서 먼저 가족을 전라도 익산으로 옮겼다,  

이에 앞서 참의공(參議公: 휘 오 정 )이 말년에 김제의 농가로 물러나 별장이 익산의 남산에 있었으므로 이 때에 감찰공이 서울의 영동에서 이 곳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공은 춘추 45세로 영동의 우사(寓舍)에서 작고 했는데 유언에 따라 남산으로 반장(返葬)을 했고 그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 봉분(封墳)이 우뚝하여 향인들이 처음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가 오씨(吳氏)의 대총(大塚)(큰무덤) 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4, 5세가 지나 자손이 번성하고 문호가 성하여 남산을 둘러싼 12동의 토지와 산원(山原)이 하나도 오씨의 점유가 아닌 것이 없었다.  

감찰공 뒤로 7, 8세를 지나 온 집안이 화(동복오문은 남인계열)를 당하여 불행하게 죽고 요절을 하여 일문이 거의 결단이나고 간혹 요행하게 면한 자는 겁이나서 멀리 이사를 가버려 마을이 온통 비게 되어 버렸다.  

  아 !!참혹하도다!!.  

그 곳 사람들의 속담이 전하여 오기를 오씨의 식송산묘(植松山墓)는 긴뱀이 개구리를 쫒는 형(形)인데 석물(石物)을 굉장히 크게 세워 뱀의 머리를 누른 탓으로 자손이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그러니 감찰공의 묘에만 석물이 없는 것은 아마 변이 났을 적에 우선 가장 윗 분의 묘소에 세워진 석물부터 치우고 그 밖의 묘는 미쳐 손을 대지 못한 것이 아닐까? 알수 없는 일이다.  

                                        (동복오씨 세적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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