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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검교참찬 판문하부사 오중화
작성자 관리자 [2021-07-06 09: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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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중화(吳仲和)  

 

검교참찬 판문하부사 탄수공 중화 묘비명  

(檢校參贊 判門下府事 灘叟公 仲和 墓碑銘)  

공의 처음이름은 법화(法華)요. 다른 이름은 성석(宬碩)이시다.  고려 충혜왕 원년(1331) 8월 3일에 귀성군(歸城君) 휘(諱) 선(僐)의 장남으로 태어나 공민왕 5년(1356년) 삼사좌복야 벼슬을 제수받고 무술년(1358년) 검교참찬문하부사에 오르셨다. 조정정사(朝廷政事)에 재임중 요승 신돈의 난에 아버지를 모시고 두언(杜言)에 가서 벼슬을 그만 두시었다.  

지월리(池月里)로 돌아와 집에 있는동안 마음을 깨끗하게하고 재물에 욕심없이 의리를 중하게 여기고 불교를 멀리하셨다.  

공은 사사(師事)받으실 때 하루는 스승이 묻기를 “무엇 하려고 밤낮없이 독서에만 열중하느냐”하니,  

공께서 말하기를 “어려서 면학은 광명한 태양이 뜨는 것 같이 떠서 넓어지고, 늙어서 배움은 촛불처럼 빛이 나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또한 아호를 쌍청(雙淸)이라고 하니 그 명성이 향인들 사이에 드높았다. 이는 실로 한나라의 대학자 정강성(鄭康成)과 정현(鄭玄)과 같다, 하고 호(號)를 탄수(灘叟)라 하였다.  

공의 성품은 강직하고 단정하여 불의에 굴하지 아니 하셨다.  

세태의 변천으로 빛을 보지 못하시고 정해(丁亥) 시월에 별세 하시니, 선친의 묘아래 동녘을 향한 유좌(酉坐)에 안장하였다  

공과 군부인(郡夫人)의 사이에 2남 4녀를 두셨다.  

장남은 정평공 휘 승이요. 차남은 제보이나 일찍 요절하였다.  

배위(配位)는 영가군부인(永嘉群夫人)권씨요. 현복군(玄福君)염(廉)의 따님이시고 을해(乙亥)(1419)에 별세하시니 묘는 공과 합장 하였다.  

2004년 후손들이 공의 묘성을 정화하고 묘비를 세웠다.  

                                                       20세손 재석(在碩)지음  


 

오중화의 졸기
검교 참찬문하부사(檢校參贊門下府事) 오중화(吳仲和)가 졸(卒)하였다.
중화는 본관이 나주목(羅州牧)의 동복(同福)이요.  구성군(龜城君) 오선(吳僐)의 아들이다.
처부(妻父)는 중대광 현복군(重大匡 玄福君)  안동권씨 염(廉)이다.
고려조에 벼슬이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이르렀다.
처음 공민왕 때에 태조께서 개성(開城)에 올라 왔을때에 선(僐)이 한번보고 기이하게 여겨서, 그 아들 중화(仲和)를 부탁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늙어서 멀지않아 죽게 되었으니 뒷날 내 자식을 보호해 주시오.”
태조가 잠저(潛邸)에 있을때에 중화(仲和)를 후하게 대접했다가, 즉위하자 삼사좌복야(三司左僕射)를 삼았다. 그러나 천성(天性)이 단정하지 못하여 남을 의혹(疑惑)하게 하므로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 새집을 짓고 벽을 바르기 전에 소를 기둥에 매어 두었더니, 소가 놀래어 기둥을 뽑았으므로, 중화(仲和)가 마침 그밑에 있다가 눌려서 죽었다.
아들은 오승(吳陞). 오제보(吳齊)가 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5년 10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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