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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운판관 의재공 오전(吳詮)
작성자 관리자 [2021-07-06 09: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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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吳詮)   1516(중종11) - 1558(명종13)

 

자(字)는 태화(太和).  호(號)는 의재(毅齋).  

아버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윤민(胤閔)이며 비(妣)는 밀양손씨(密陽孫氏) 충의위(忠義衛) 적순부위(迪順副尉)를 지내신 효온(孝溫)의 따님이시다. 

1537년(중종32) 문과 과거 병과에 급제 승문원정자. 성균관전적. 용양위부사정. 1541년 경기전(慶基殿) 참봉을 거쳐 이듬해 사헌부(司憲府)감찰(監察).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역임하고 1544년 29세에 영남(嶺南)암행어사를 제수받고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로 무안현감으로 좌천되어 해인귀가(解印歸家)하고 다시 1555년 삼도해운판관(三道海運判官) 으로 기용되었다. 

저서로는 시문집(詩文集)으로 의재선생집 2권이 있다. 

무오 1558년 11월 17일 조회하는 궁전에서 명을 거두자 다음해 1월에  전남 고흥군 두원면 금계리 경좌(庚坐)언덕에 장사 하였다. 

1999년 후손들의 성금으로 묘역(墓域)을 정화하고 최병심이 지은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명(銘)에 이르기를, 

휴암(休菴)의 충성에다 그 의리를 한가지로 하였고 

하서(河西)의 어짊에다 그 덕을 더하였네. 

공의 나이가 비록 오래 살지 못하였고 

공의 지위가 비록 크게 나타나지 못하였으나 

공의 명망은 영구히 이 산과 같이 응결 하리로다. 

                             흠재(欽齋)최병심(崔秉心)찬(撰)함. 

 


 

 

공이 영남을 암행 할때에 

서넛의 군수가 국가의 기일에 배를 뛰우고 풍악을 베풀자 

공이 시를 배 가운데에 던지기를  

< 먼곳에서 온 나그네가  

  말을 머무르고 듣고 즐거워 하지 않음은 

  순 임금이 돌아가신 

  창오산(蒼梧山)의 빛이 구름속에 저물었네> 고 하였더니 모든 군수가 사표를 제출하고 갔다. 

일찍이 춘첩시(春帖詩)를 지어 올리기를 

< 하늘의 뜻은 생장(生長)하는데 있고 

  어진 마음은 받들어 복종 하는데에 있으니 

  이제 부터라도 만물 생성의 양덕을 통하게 하고 

  모름지기 봄철의 얼음 시냇물 건너기를 경계 하리라> 

고 하였으니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뜻이 마음이 부드럽고 온화한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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