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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승지공 오연(承旨公 吳演)
작성자 관리자 [2021-07-06 09: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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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지 오공 연 세적기(承旨 吳公 演 世蹟記)

공(公)의 휘(諱)는 연(演)이며, 공의 생졸(生卒)은 세보(世譜)에 기록이 없다. 

공(公)의 고(考)는 선(璿)이요. 문헌공(文獻公)의 손(孫)이시다. 

 

고(考)선(璿)은  고려조의 광정대부 도첨의시랑 찬성사 판도랑사 상호군(匡靖大夫 都僉議侍郞 贊成事 判圖郞事 上護軍)이요. 시호(諡號)는 문정(文靖)이시다.

충렬왕(忠烈王)때에 문신(文臣)이며 재상(宰相)에 오른 귀성군(龜城君) 잠(潛)은 공의 백(伯)이시다.

 

 

 

충렬왕 29년(1303년)에 문신으로 비서감(秘書監)에 오르시고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주관하여 구환(具桓), 최해(崔瀣), 박인지(朴仁祉)등을 선발 하였다. 

곧 권지우부승지(權知右副承旨)에 올랐으나 당시 충렬왕의 측근으로서 충선왕(忠宣王)을 모함 하였다고 하여 원(元)나라에서 파견된 탑찰아(塔察兒)등에 의하여 정동행성(征東行城)에 유배 되었다. 

그러나 곧 소환되어 한희유(韓希愈), 최숭(崔崇), 송린(宋璘), 송방영(宋邦英)등 충렬왕의 다른 측근들과 함께 별청(別廳)에서 국정을 전담 하였다. 

다음해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으며 충렬왕을 수종하여 원(元)나라에 가서 왕유소(王惟紹)등과 함께 충선왕을 모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충렬왕 33년(1307년)에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무종(武宗)을 옹립한 공으로 실권을 장악하자, 곧 파직되고 섬으로 유배되었다. 

충렬왕의 측근들이 대부분 소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변(鎭邊)으로 사치(徙置)되어 풀려나지 못하였다.  

                            동복오씨 세적편에서 

 

 

해남군 계곡면 원대하동(海南郡 溪谷面 元大蝦洞)에 단(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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