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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백 오후정일 청덕 휼민 선정비(方伯 吳侯挺一 淸德 恤民 善政碑)
작성자 관리자 [2024-10-07 03: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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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 오후정일 청덕 휼민 선정비(方伯 吳侯挺一 淸德 恤民 善政碑) 

오정일 선정비, 비(碑)의 전문은 방백 오후정일 청덕 휼민 선정비(方伯 吳侯挺一 淸德 恤民 善政碑)로서 총 높이가 3미터에 이르는 큰 비석으로 아랫부분의 귀부(龜趺)와 중간의 비신(碑身), 윗 부분의 이수(螭首)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비석은 1660년 고양군 덕수천(현재의 창릉천)에 새롭게 석교(돌다리)를 만들면서 당시 경기도 관찰사인 오정일(吳挺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앞면과 뒷면에 비문이 잘 남아 있어 건립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오정일(1610~1670) 경기도 관찰사는 조선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호는 귀사(龜砂)입니다. 1639년에 문과에 급제한 뒤 황해도 및 경기도 관찰사를 비롯하여 도승지를 거쳐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고양 덕수 자씨 교명비(高陽 德水 慈氏 嬌銘碑)는 총 높이 3.4미터의 비석으로 직사각형의 비좌에 비신과 옥개(屋蓋)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비문의 앞쪽 윗부분에 제목 글씨인 두전(頭篆)이 있고 그 아래로 비문이 세로로 새겨져 있습니다. 비석은 현종1년(1660년)에 조선남(趙善男)과 고양지역의 주민들이 서로 힘을 모아 덕수천(현 창릉천)에 돌다리를 만들고 그 내력을 상세히 적은 것입니다. 비문에 의하면 석교(石橋)를 만들어 홍수에 대비하고 임금과 백성들이 편안히 다닐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어 다리의 축조 목적을 알 수 있으며 비의 앞과 뒷면에는 약 800여 명의 사람 이름이 한문과 이두문자(吏讀文字) 등으로 적혀 있어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2024.10.7

청계 경탁(28세손 묵재공파) 올림

참고 자료

https://m.blog.naver.com/lst74/221571593044